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미처 (문단 편집) === [[필리핀 해 해전]] ===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58기동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 일본군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공격할 것을 주장했으나 고속전함부대의 지휘관인 윌리스 리 제독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어차피 스프루언스는 '사이판, 티니안, 괌을 일본군으로부터 빼앗아 지키라'는 니미츠의 명령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일본군을 찾아서 공격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미처가 툴툴거리든 말든간에 미군은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지 않았고, 오자와의 일본 항모전단은 미 항모전단을 공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가 칠면조 사냥을 당하고 등뼈가 부러졌다. 아무튼 마크 미처는 요격전이 끝난 후 소원대로 일본 함대를 공격해서 쏠쏠한 전과를 챙겼고, 마술사라는 별명도 얻는다. 그러나 일본 함대가 너무 먼 위치에 있었던 데다, 늦은 시간에 공격대를 투입했기에 공격대는 연료부족과 야간착함이라는 이중고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마크 미처는 결단을 내렸다. >빛을 밝혀라! (Turn on the lights!) 야간에 함재기도 없는 항공모함이 [[등화관제]]를 깨고 불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이었지만, 미처의 결단은 수많은 조종사를 살리게 되었다. 다만 항공모함이 아닌 다른 배들도 일제히 불을 밝히는 바람에 조종사들이 구축함이나 순양함에 착함을 시도하다가 불시착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거의 모든 비행기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귀환하지 못한 비행기들도 미처 제독의 지시에 따라 철저한 구조 활동을 진행하여 일부 실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력을 구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때 [[https://www.socpsy.com/casks/killer-kane-transfer-verification/|작은 개그 에피소드]]. 마크 미처는 구조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조종사를 구한 함선에겐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배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에서야 무슨 아이스크림 배급으로 포상을 하느냐 싶지만, 당시 아이스크림은 일반인은 배급량이 제한되어 쉽게 구할 수 없는 우유와 설탕이 대량으로 들어가는 귀한 몸이었고, [[금주법/미국|금주법]]의 영향으로 타국에 비해 주류 통제가 심한 미군에서 그것도 항해 도중 술을 마실 수 없었던 해군 장병들에게 있어 술을 대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호식품이었다. 그래서 2차대전 관련된 매체에서는 장병들을 독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예를 들면 미국 참전수기 소설 및 HBO의 동명의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공수작전 전날 저녁에는 항상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던가, 마찬가지로 HBO 미드 [[퍼시픽]]에서 함상 주말 예배가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지급했던 모습이라던가...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항공모함)|CV-2 렉싱턴]]이 침몰할 때 구조를 대기하다가 [[준사관]] 한 명이 아이스크림이 창고에 남아있는 것을 깨닫고 침몰하는 와중에 문을 따서 아이스크림을 빼 먹은 사건도 있을 정도. 그런데 배글리급 구축함 DD-392 USS 패터슨은 엔터프라이즈 비행단(VF-10) 지휘관인 파일럿 윌리엄 "킬러" 케인 (William “Killer” Kane) 대령을 구출하자 '''"우리 비행단장님 몸값은 아이스크림 얼마치입니까?"''' ("How much ice cream is Killer Kane worth?")라고 보고했다.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으므로 USS 패터슨은 충분한 양(약 25갤런≒94.64리터)의 아이스크림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당시 [[구축함]]의 급양환경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구축함 승조원들은 아이스크림 생산설비가 딸린 대형함과 함께 작전에 투입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스크림을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구축함 승조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절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전이 끝난 후, 미국 본토에서는 스프루언스의 소극적인 지휘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다. 미국의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해전 규모에 비해 대함전과가 작았고,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나구모 함대의 항공모함인 [[즈이카쿠]]의 격침도 실패하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탓이다. 미처 역시 스프루언스가 요격전에만 전념하고 일본 함대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며 상관을 신나게 씹어댔다. 미처는 나중에 자신이 너무 과했다고 인정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전후에 일본군의 자료를 연구해본 결과, 요격전에 전념한 스프루언스의 판단은 옳았다. 미 해군은 그제서야 스프루언스를 인정했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스프루언스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 의회는 스프루언스의 원수 진급을 거부하고 만다. 일본 해군의 등뼈를 부러뜨린 명장이 전공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스프루언스로서는 빈약한 전력으로 일본 최강의 함대를 격파하고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는데도 좌천당한 [[프랭크 플레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프루언스가 자신의 전공을 인정받은 것은 그가 죽은 후, 니미츠 제독의 전기가 출간된 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